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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가는 대로

연결되다 Wired

Big Gun 2011.06.15 00:25
오늘은 아주 의미있는 날이다. 세상과 연결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전세계 사람들과의 연결.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인터넷 연결을 완료하였다. 어? 이제서야?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나의 삶은 아주 단조로워졌다. 물론 회사에서의 하루하루는 다이나믹 그자체이지만서도, 하루 일과를 초등학생처럼 원형 계획표로 그려보자면 아주 단순하다. 6시 30분 기상 및 출근준비, 7시 30분 집에서 나가 회사로, 8시 회사도착, 그리고 이러쿵 저러쿵 하다가 저녁 10시, 10시 30분 집 도착, 간단하게 씻고 정리하고 쇼파에 앉아서 책 보다가 12시 전에 취침. 지난 1년간의 생활을 평균내보면 대충 이렇게 정리된다. 그러니까 집에는 인터넷선은 물론이고 TV, 컴퓨터 조차 없었다.

하루 종일 16시간 이상 컴퓨터를 사용하고, 모니터 하나도 부족해서 2개를 설치해놓고는 핸드폰과 유선전화를 수시로 사용하는 말그대로 Super Wired Life에서 벗어나 아주 아날로그적이지만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내 집에서 만큼은. 유일한 전자제품이라 한다면 MP3 정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상쾌한 음악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집은 아주 원초적인 환경이 완성이 되었지만, 왠지 모르게 재미있는 요소가 없었다. 방 곳곳에 쌓여있는 책들은 충분한 지적 만족감을 선사하지만, 그 자체로서는 뭔가 부족함이 느껴졌다. 물론 주말에는 본가에 올라가서 인터넷도 하고 TV도 보고 영화관에서 멀티미디어의 향연을 즐겼지만서도 주중의 무료한 휴식은 딱 2%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올해 초 나에게 준 첫 선물은 미니 노트북. 휴대가 간편한 11인치의 슬림형 노트북이다. 이 장난감을 가지고 여러가지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역시나 오늘날은 인터넷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결국엔 PMP와 워드프로세서 중간 사이에서 오락가락할 수 밖에 없는 신세였다. 인터넷을 별로 사용하지 않고, 사용하고 싶지도 않은 상황이었기에 여러가지 고민을 하다, WIBRO 라도 연결할까 하였으나 그것도 별 신통치 않았고, 그냥 2주일 넘게 "노트북"처럼 방 한구석에 방치해놓는 말도 안되는 상황을 연출하게 되었다.

어느날 나의 사랑 안락의자에 앉아 문득 든 생각. 이러다 너무 뒤쳐지는 것 아니야? 물론 책을 열심히 읽고 있으니, 게다가 이른바 "자기계발"서적을 읽고 있으니 사람들보다 지적으로 쳐진다는 느낌은 덜하였지만 이를테면 감각, 트렌드에서는 쳐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회사에 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왠만한 광고판 하나 없고, 그냥 대학 캠퍼스처럼 낮은 건물들과 녹지가 우거진 환경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이제 청학동 생활을 마무리 할 때라고.

이러한 생각에 이르다 보니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본가에 있는 TV를 최신형으로 교체하겠다고 호언장담한 상황이었지만, 본가보다 내 방에 놓을 TV가 시급해졌다. TV는 물론이거니와 라디오도 잘 안나오는 수원이다 보니, 당연히 케이블을 연결해야 할테고.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이런 장비들을 놓을 책상도 필요하고, 그럼 의자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이정도만 충분할까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복잡하게 했다. 역시나 속세의 생활은 어지럽다.

순차적으로 하기로 했다. 너무 갑자기 모든 것을 하려하면 배탈날 수도 있으니까. 일단 케이블TV는 더 많은 고려를 한 뒤에 도입하기로 하고 인터넷 연결을 시도했다. TV보다는 TV가 지원되는 모니터를 구입해서 PC기능에 주안점을 두기로 했다. 가구는 좋은 것을 보면 볼 수록 비싼 것을 사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면서, 1년 후면 방뺄 거라는 생각으로 아주 경제적인 아이템으로 주문을 했다.

어제 밤 9시에 인터넷 신청센터에 전화를 걸어서 당장 설치해달라고 했던 응석을 부렸건만,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그건 안된다고 해서 오늘 저녁으로 연기를 했다. 퇴근 하기 전부터 기사 아저씨가 기다리면서 원룸 배선을 확인하고 있었고, 설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1년 약정에... 인터넷만 신청하시는거 맞죠?"
"네."
"TV는 안보세요?"
"아... 1년동안 인터넷 없이 살았는데요..."
"네? 정말요? 뭐 하시면서 지내셨는데요?"
"여기 쌓여있는 책 보세요. 책 볼 시간도 별로 없어요..."
"참 대단하신 분이네."

기사 아저씨는 1년동안 인터넷, TV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경의에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이 업계에 계신 분이다 보니, 명품가방 파는 사람이 명품가방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명품가방 하나 없이 살 수 있냐고 묻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1년간 자연상태로 내 방을 유지했던 것은 대단하긴 하다. 어떤 이는 그정도 돈 낼 월급을 받지 않냐면서, 또 어떤 이는 집이 심심해서 갈 마음이 나겠냐면서 나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내 딴에는 청정지역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느정도 자부심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 자부심이 이제는 없어지긴 하겠지만, 이 작은 방에서 전세계 사람들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신비감을 나에게 부여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몇 달간 정지되었던 블로깅이 다시 시작되다는 점부터가 놀랍지 않은가.

퇴근하면 책 보다 잠만 자는 것이 아니라, 글도 쓰고 사람 사는 얘기도 보고 요즘 트렌드도 살펴볼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아주 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여유를 갖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완성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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